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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유대철 베드로(한국 순교자, St. Peter Yu Tae-chol)
축일 : 9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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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사진
작품 6
<성 남종삼 요한,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유대철 베드로 / 한국의 성모와 순교복자 – 남성 순교자들>
작가: 장우성(張遇聖, Jang Woo-sung)
연대: 1949년
소장: 바티칸 인류복음화성 고문서고(Archivio Storico de Propaganda Fide), 바티칸
기법·시대: 종이에 채색, 현대 한국화
유형: 한국 순교 성인 군상(3연작 중 오른쪽 패널)
성화특징
이 작품은 장우성이 제작한 3연작 <한국의 성모와 순교복자> 가운데 오른쪽 패널로, 한국의 남성 순교자 세 사람을 그린 작품입니다. 왼쪽의 붉은 관복을 입은 인물은 성 남종삼 요한, 중앙 뒤편의 흰 도포와 검은 갓을 쓴 인물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오른쪽 앞의 어린 인물은 성 유대철 베드로입니다. 세 사람의 머리에는 가느다란 원형 후광이 그려져 순교 성인임을 나타냅니다. 성 남종삼 요한은 정3품 승지를 지낸 관료였던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듯 붉은 관복과 관모를 갖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붉은 옷은 사제의 제의가 아니라 조선 관리의 관복입니다. 그 뒤의 성 김대건 안드레아는 화려한 사제복 대신 흰색의 전통적인 조선 복식과 갓을 착용하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한국인 사제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합니다. 앞쪽의 성 유대철 베드로는 분홍색과 청색이 조화를 이룬 한복을 입은 어린 소년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두 손을 아래쪽에서 모으고 고개를 들어 왼쪽 위를 바라보고 있으며, 그 곁에는 길게 이어지는 칼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칼은 유대철 개인의 실제 순교 방법을 나타내는 도구라기보다 작품 속 인물들이 순교자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도상적 요소로 이해해야 합니다. 세 인물은 모두 화면 왼쪽 또는 왼쪽 위를 향하고 있는데, 이는 이 패널만으로는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운 중요한 구도입니다. 원래 3연작에서는 중앙 패널에 성모자와 어린 세례자 요한이 자리하며, 오른쪽 패널의 남성 순교자들은 그 중앙의 성모자를 바라보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인물들의 시선은 막연히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3연작 전체에서 성모자에게 향하도록 의도된 것입니다.
성화해설
이 작품은 1949년 장우성이 장발 루도비코와 노기남 대주교의 권유를 받아 제작한 <한국의 성모와 순교복자> 3연작의 일부입니다. 이후 1950년 성년을 맞아 바티칸에서 열린 전교지역 성미술 전시회에 출품되었으며, 한국의 가톨릭 신앙을 서양의 전통적인 성화 형식에 그대로 맞추기보다 한국인의 얼굴과 복식, 한국화의 표현방식으로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작품입니다. 특히 세 순교자의 신분과 연령을 복식과 외모로 뚜렷하게 구별한 점이 주목됩니다. 관료였던 남종삼은 관복으로, 김대건은 갓과 흰옷을 입은 한국인 사제로, 유대철은 어린 소년의 모습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시대와 박해 속에서 순교했으므로 실제 한자리에 있었던 역사적 장면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한국 교회의 순교 신앙을 대표하는 인물들을 하나의 신앙 공동체로 결합한 상징적 구성입니다. 장우성은 이 작품에서 인물의 외적인 아름다움보다 ‘내면적인 거룩함’을 드러내는 데 관심을 두었다고 전해집니다. 특히 어린 유대철 베드로에게는 죄에 물들지 않은 순수함을 표현하려 했다는 작가의 설명이 전해지며, 이는 화면 속 유대철의 맑고 앳된 얼굴과 위를 향한 시선에서 잘 드러납니다. 따라서 그의 어린 모습은 단순한 연령 표현을 넘어 순수한 신앙을 나타내는 중요한 조형적 요소입니다. 무엇보다 이 그림은 단독 작품으로 보기보다 3연작 전체의 관계 속에서 이해할 때 의미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중앙의 성모자를 향해 기도하고 시선을 보내는 한국 순교자들의 모습은 성모의 보호 아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신앙을 증언한 한국 교회를 상징합니다. 전통적인 후광과 순교자의 상징에 조선의 관복·갓·한복을 결합한 이 작품은 가톨릭 성화의 보편적 도상을 한국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새롭게 표현한 초기 한국 가톨릭 성화의 중요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