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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홍영주 바오로(한국 순교자, St. Paul Hong Yong-ju)
축일 : 9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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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사진
작품 3
<성 홍영주 바오로의 신앙 증언>
작가: 탁희성 비오(Tak Hee-sung, Pius)
연대: 현대
소장: 미상
기법·시대: 한국화, 수묵담채, 현대 한국 가톨릭 성화
유형: 성인 순교 일화 장면(옥중 심문과 형벌)
성화특징
화면 왼쪽에는 성 홍영주 바오로와 또 한 명의 신자가 커다란 목칼을 쓴 채 바닥에 앉아 있고, 오른쪽에는 이들을 심문하는 관리와 형리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두 죄수는 손과 몸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은 상태이며, 길고 무거운 목칼이 몸 앞으로 비스듬히 내려와 당시 옥중에서 겪었던 육체적 고통과 억압을 직접적으로 보여줍니다. 두 신자는 눈을 감거나 아래로 시선을 낮춘 채 비교적 평온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반면 오른쪽의 관리들은 손가락으로 이들을 가리키거나 손을 들어 명령하는 듯한 동작을 취하고 있어, 배교를 강요하는 권력과 이를 거부하는 신앙인의 태도가 대조됩니다. 특히 오른쪽 앞 인물은 검은 관복과 붉은 장식이 달린 관모를 착용하여 심문을 담당하는 관리임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왼쪽 인물의 머리 뒤에는 옅은 황금빛 원광이 표현되어 있어 화면 속 순교 성인을 식별하게 합니다. 다만 함께 목칼을 쓴 다른 인물의 신원을 이 그림 자체만으로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홍영주 바오로가 형 홍병주 베드로와 함께 체포되어 심문과 형벌을 받았다는 생애를 고려하면 형제를 함께 표현했을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으나, 작품에 별도의 인물명이 표시되어 있지 않으므로 단정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화면 위쪽에는 당시의 판결문이나 심문 기록을 연상시키는 한문과 한글 글씨가 넓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인물화 위에 문자 기록을 결합한 구성은 단순한 순교 장면을 넘어 조선시대의 형사 기록이나 순교 사료를 펼쳐 보는 듯한 인상을 주며, 전체적으로 먹과 옅은 채색을 사용하여 역사 기록화와 같은 분위기를 형성합니다.
성화해설
탁희성 비오는 성 홍영주 바오로의 순교를 처형의 순간보다 그에 앞선 심문과 옥중 고난을 중심으로 표현하였습니다. 홍영주 바오로는 1839년 기해박해 때 형 홍병주 베드로와 함께 체포되었으며, 신앙을 버리라는 요구뿐 아니라 다른 신자들을 고발하라는 압박도 거부했습니다. 작품 속 무거운 목칼은 이러한 박해와 구금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신앙을 지키기 위해 감당해야 했던 고통을 상징합니다. 특히 화면은 순교자와 관리들의 태도를 대조적으로 구성합니다. 관리들은 손짓과 몸짓으로 적극적으로 심문하고 명령하지만, 목칼을 쓴 신자는 움직임이 제한된 상태에서도 비교적 고요한 모습을 유지합니다. 이러한 대비를 통해 화가는 외적으로는 권력을 가진 관리들이 죄수를 억압하고 있지만, 내적으로는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 순교자가 오히려 흔들리지 않는 자유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상단의 기록문을 연상시키는 글씨와 조선시대 관복, 목칼, 바닥의 멍석 같은 세부 표현은 이 사건을 추상적인 순교 이야기가 아니라 조선 후기 박해라는 구체적인 역사 안에 위치시킵니다. 서양식 순교화의 극적인 표현 대신 한국화의 절제된 먹선과 담채를 사용한 것도 한국 순교사의 한 장면을 전통적인 기록화처럼 보여주는 이 작품의 특징입니다. 성 홍영주 바오로는 여러 차례의 회유와 형벌에도 끝까지 마음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형 홍병주 베드로가 순교한 다음 날인 1840년 2월 1일 당고개에서 참수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목칼을 쓴 모습은 그의 최후 자체보다 최후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던 신앙의 시험을 보여줍니다. 육체는 목칼에 묶여 있지만 신앙만은 굴복하지 않는 모습이 이 성화가 강조하는 홍영주 바오로의 순교 정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