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일 : 05월 29일
시성 :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 — 교황 프란치스코가 동료 순교자 123위와 함께 시복 선포
성인 개요
탄생 : 1759년, 조선 전라도 진산 장구동
사망 : 1791년, 전주 — 순교
수호 : 한국 교회의 평신도 신앙인, 양심과 신앙의 자유를 지키는 이들
상징 : 종려가지(순교), 십자가(신앙의 증언), 불타는 신주(신앙 결단), 두루마리·서책(교리 탐구)
성인의 삶과 신앙
[주요활동]
윤지충 바오로는 진사 시험에 합격한 양반 가문의 재원으로, 정약용을 통해 신앙을 접한 뒤 1787년 세례를 받았습니다.
어머니와 아우, 인척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신앙을 전파하던 중, 북경 주교의 제사 금지령에 따라 집안의 신주를 불살랐습니다.
1791년 어머니가 선종하자 유교식 제사 대신 천주교 예절로 장례를 치렀으며, 이로 인해 체포령이 내려지자 자수하였습니다.
전주 감영으로 이송된 그는 혹독한 고문 속에서도 천주교가 진리임을 역설하며 교우들을 끝까지 보호하였습니다.
임금의 명령보다 하느님의 법이 우선임을 당당히 선포하며, 칼날 아래 죽는 것을 신앙인의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1791년 12월 8일, 전주 남문 밖에서 기쁜 표정으로 교리를 설명하며 32세의 나이로 한국 교회의 첫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성인해설]
복자 윤지충 바오로는 유교 전통이 지배하던 사회에서 하느님을 '큰 부모'로 모시며 신앙의 절대 가치를 증거한 인물입니다.
그는 관습적인 효도보다 하느님께 드리는 참된 경배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도리임을 삶과 죽음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세상의 명예를 뒤로하고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 그의 용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신앙의 우선순위를 일깨워줍니다.
형벌 중에도 신음 대신 찬미를 올렸던 그의 인내는 현대 신앙인들이 본받아야 할 굳건한 신앙의 자세입니다.
죽음을 잔치처럼 즐거워했던 그의 모습은 부활에 대한 확신과 천국을 향한 열망이 얼마나 컸는지를 증명합니다.
한국 교회의 초석이 된 그의 거룩한 희생은 일상의 시련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알려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