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일 : 09월 20일
시성 : 1984년 5월 6일 —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시성됨
성인 개요
탄생 : 1792년, 서울
사망 : 1840년 01월 31일, 서울 당고개(순교)
활동 지역 : 서울
시대 배경 : 19세기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기(기해박해)
신분·호칭 : 중인, 회장, 순교자
수호 : 서울의 신자 공동체, 평신도 사도직
상징 : 회장의 지팡이(사목 보조), 십자가, 칼(순교)
성인의 삶과 신앙
[주요활동]
성 박종원 아우구스티노는 서울의 중인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불평 없이 어머니를 봉양하며 신앙을 지켰습니다.
학문이 뛰어나고 성품이 온화했던 그는 순교자의 딸인 고순이 바르바라와 혼인하여 모범적인 성가정을 이루었으며, 교리 지식을 바탕으로 이웃의 영혼을 구하는 데 전신하였습니다.
그의 탁월한 덕행과 재능을 알아본 앵베르 주교는 그를 서울의 회장으로 임명하였습니다.
그는 박해의 위험 속에서도 신자들 사이의 악습을 고치고 권고하는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였으며, 특히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밤마다 옥에 갇힌 신자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격려하는 용기를 보여주었습니다.
결국 1839년 10월 26일 아내와 함께 체포된 성인은 형조에서 팔다리가 부러지는 잔혹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신앙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는 1840년 1월 31일 당고개에서 48세를 일기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함으로써, 평소 갈망하던 대로 주님을 향한 사랑을 목숨으로 증거하였습니다.
[성인해설]
성 박종원 아우구스티노는 '대관절 언제 성을 내는 것을 보게 될까'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온화한 성품을 지녔으나, 신앙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강인했던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소유자였습니다.
그의 삶은 십자가를 바라보며 "주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으니 나도 그분을 위해 죽는 것이 마땅하다"고 고백했던 철저한 그리스도 중심적 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회장으로서 그가 보여준 열정은 단순히 조직을 관리하는 수준을 넘어, 길 잃은 양들을 사랑으로 타이르고 옥에 갇힌 형제들을 목숨 걸고 돌보는 목자적 사랑의 실천이었습니다.
특히 아내인 성녀 고순이 바르바라와 함께 같은 날 체포되어 서로를 격려하며 순교의 길을 간 모습은 오늘날 그리스도인 가정의 참된 일치와 신앙 전수의 표본이 됩니다.
그의 죄목 중 하나가 '천당과 지옥을 확실한 사실처럼 말했다'는 것이었을 만큼, 성인의 믿음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실제적인 삶의 확신이었습니다.
우리는 박종원 아우구스티노 성인을 묵상하며, 삭막한 세상 속에서 온유한 미소로 이웃을 대하면서도 진리 앞에서는 한 치의 흔들림 없는 단단한 신앙의 자세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