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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이연희 마리아(St. Lee Yeon-hui Maria)
축일 : 09월 20일
시성 :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시성
성인 개요
탄생 : 1804년, 경기도 양근 사망 : 1839년 09월 03일, 서울 서소문 밖(순교) 활동 지역 : 서울 시대 배경 : 19세기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기(기해박해) 신분·호칭 : 회장 부인, 평신도, 순교자 수호 : 어머니, 교리 교사, 박해받는 가정 상징 : 종려가지(순교의 승리), 십자가(신앙의 증거), 형구(박해와 고난)
성인의 삶과 신앙
[주요활동] 성녀 이연희 마리아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성 남명혁 다미아노의 아내로, 성격이 강직하고 영리하며 매우 부지런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녀는 교리 지식이 풍부하여 많은 여교우를 가르치고 성사를 잘 받을 수 있도록 도왔으며, 주교와 신부들을 자기 집에 모셔 전례를 준비하는 등 선교 활동에 열성적으로 헌신했습니다. 1839년 4월 7일, 그녀는 한 밀고자의 고발로 남편과 12세 된 아들과 함께 체포되어 투옥되었습니다. 초기에는 포졸들의 무례한 언동을 꾸짖기도 했으나, 남편으로부터 "순량한 양같이 죽어야 한다"는 권고를 들은 후에는 모든 모욕과 학대를 묵묵히 인내하며 신앙을 증언했습니다. 가장 큰 시련은 다른 감방에 갇힌 어린 아들이 매질당한다는 소식을 듣는 '모정의 순교'였으나, 그녀는 아들이 배교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마음의 평화를 지켰습니다. 마침내 1839년 9월 3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36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며 영원한 천국에 들었습니다. [성인해설] 성녀 이연희 마리아는 가정을 '작은 교회'로 일구고, 남편의 사도직을 돕는 조력자이자 스스로도 훌륭한 교리 교사였던 평신도 사도의 전형입니다. 그녀의 강직한 성품은 박해의 위협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신앙의 토대가 되었으며, 자칫 인간적인 분노로 흐를 수 있었던 마음을 남편의 권고에 따라 그리스도의 겸손으로 승화시켰습니다. 특히 어린 자녀의 고통을 곁에서 지켜봐야 했던 어머니로서의 시련은 육체적 고문보다 더 혹독한 것이었으나, 그녀는 이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제물로 봉헌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자녀를 하느님께 온전히 맡겨드리는 참된 그리스도인 부모의 자세가 무엇인지를 깊이 묵상하게 합니다. 어떤 증언처럼 "오직 천국을 향해 있었던" 그녀의 영혼은 세속의 모든 가치보다 하느님 사랑을 우선시했습니다. 우리는 이연희 마리아 성녀를 묵상하며, 우리 삶의 현장에서 이웃에게 교리를 전하고 가족과 함께 시련을 이겨내며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용기와 지혜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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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1
제목: <성녀 이연희 마리아의 순교>
작가 : 탁희성 비오(Tak Hee-sung Pius) 연대 : 20세기 소장 :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 기법·시대 : 채색화, 현대 종교화 유형 : 순교 장면화 [성화특징] 형틀과 형구를 생생하게 묘사하여 순교의 고통스러운 순간을 사실적으로 전달합니다. 인물들의 역동적인 배치를 통해 당시 박해의 긴장감을 한층 강조하고 있습니다. 전통 복식과 건축 배경을 활용하여 조선 시대의 역사적 상황을 구체화했습니다. 절제된 색채와 단순화된 표현으로 비극성과 숭고함을 동시에 부각합니다. [성화해설] 이 작품은 20세기 한국 가톨릭 미술의 흐름 속에서 작가가 조선 후기 박해 장면을 역사적으로 재현하고 순교자의 신앙적 증언을 드러내려는 의도로 구성되었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 충성을 시각적으로 강조합니다. 탁희성 비오 작가는 당시의 비극적 상황을 절제된 표현으로 담아내어 숭고한 영적 가치를 돋보이게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관람자는 순교자들이 보여준 굳건한 신앙의 의미를 깊이 있게 되새겨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