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일 : 5월 6일
시성 : 1628년, 교황 우르바노 8세
성인 개요
탄생 : 1182년경으로 전해짐, 프랑스 남부 마생트푸엘로 전해지나 출생지·연도에 이견 있음
사망 : 1258년 05월 06일, 에스파냐 바르셀로나로 보는 견해가 있음
활동 지역 :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한 이베리아반도와 지중해 지역
시대 배경 : 12~13세기, 이베리아반도의 종교적 갈등과 전쟁·포로 교환이 이어지던 시기
신분·호칭 : 수도자, 메르체다리오회 설립자, 개정 로마 순교록에는 사제로 표기됨
수호 : 포로와 노예로 붙잡힌 이들
상징 : 흰 수도복(메르체다리오회의 봉헌 생활), 끊어진 사슬(포로의 해방), 성모상(속량의 성모에 대한 신심)
주요활동
성 베드로 놀라스코의 어린 시절에는 서로 다른 전승이 섞여 있습니다. 프랑스 남부 랑그도크의 마생트푸엘에서 태어나 가족과 함께 바르셀로나로 이주했다고 전해지지만, 출생지를 바르셀로나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는 상인으로 활동하며 재산을 얻었고, 여러 지역을 오가면서 포로로 붙잡혀 자유를 잃은 그리스도인들의 처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재산과 동료들이 모은 구호금으로 포로들의 몸값을 지불하고 석방을 돕는 일에 힘썼습니다. 제공된 기록에 따르면 1203년경부터 동료들과 함께 이러한 활동을 이어 갔으며, 필요한 비용이 늘어나자 개인적인 자선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의 활동은 고통받는 이들에게 물품을 전달하는 데서 나아가, 자유를 되찾고 신앙을 지킬 수 있도록 돕는 일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수도회 전승은 1218년 성모님의 환시를 계기로 포로 구출을 위한 수도회가 설립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성 베드로 놀라스코는 아라곤의 국왕 제임스 1세와 페냐포르트의 성 라이문도의 도움을 받아 ‘노예 해방을 위한 속량의 성모회’, 곧 메르체다리오회를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수도회는 1235년 교황 그레고리오 9세의 승인을 받았으며, 회원들은 청빈·정결·순명 외에 포로의 구출을 위해 필요하다면 자신을 대신 내어놓겠다는 특별한 서원을 하였습니다.
그는 수도회 설립 이후에도 포로 석방을 위한 활동을 이어 갔으며, 자신이 포로를 대신해 억류되었다는 이야기와 바다에서 구출되었다는 전승도 전해집니다. 말년에는 총장직을 후임자에게 맡기고 기도와 보속에 전념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628년 시성되었으며, 과거에는 1월 31일과 1월 28일에 기념되었으나 개정 로마 순교록은 5월 6일에 그를 기념합니다. 사제품을 받지 않은 수도자로 설명하는 기록이 많은 반면, 개정 로마 순교록은 그를 사제로 표기하므로 이 차이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인해설
성 베드로 놀라스코의 신앙은 자유를 잃은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구체적인 도움으로 응답한 데서 드러납니다. 그는 상인으로서 얻은 재산과 경험을 다른 이들의 해방을 위해 사용하였으며, 자선의 범위를 자신의 안전과 생명까지 내어놓는 헌신으로 넓혔습니다. 수도회의 특별한 서원은 이러한 사랑을 공동체가 지속적으로 실천하려는 결단을 보여줍니다.
그의 삶은 누군가의 자유와 존엄을 회복하는 일이 신앙의 실천과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오늘날에도 폭력과 착취, 억압으로 선택의 자유를 빼앗긴 이들의 처지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이끕니다. 성모님을 향한 신뢰와 이웃을 위한 행동이 함께 나타나는 그의 모습은, 기도가 고통받는 사람을 향한 책임 있는 돌봄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포로를 위해 자신의 자유까지 내어놓으려는 그의 헌신에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따르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 사랑 안에서 고통받는 사람은 도움의 대상일 뿐 아니라, 하느님께서 소중히 여기시는 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의 삶은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은총이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이어질 때 더욱 깊이 드러난다는 사실을 묵상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