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일 : 09월 20일
시성 :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인 개요
탄생 : 1795년, 경기도 양근 마재
사망 : 1839년 09월 22일, 서울 서소문 밖(순교)
활동 지역 : 서울, 경기 양근, 중국 북경
시대 배경 : 19세기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기(기해박해)
신분·호칭 : 양반, 신학생, 회장, 순교자, 조선 교회의 기둥
수호 : 한국의 평신도 사도직, 신학생
상징 : 상재상서(교회 호교론서), 십자가, 칼(순교)
성인의 삶과 신앙
[주요활동]
성 정하상 바오로는 신유박해 때 순교한 복자 정약종의 아들이자 정약용의 조카로, 어린 시절부터 가산 몰수와 친척들의 냉대 속에서도 어머니 성녀 유 체칠리아로부터 신앙을 전수받았습니다.
그는 목자 없는 조선 교회의 비극을 끝내기 위해 양반 신분을 감추고 하인 노릇을 하면서까지 북경을 9차례나 왕래하며 성직자 영입 운동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그의 끈질긴 노력과 로마 교황청에 보낸 탄원서 덕분에 조선 독립교구가 설정되었고, 마침내 앵베르 주교를 비롯한 서양 선교사들을 영입하여 자신의 집에 모셨습니다.
성인은 앵베르 주교로부터 직접 라틴어와 신학을 배우며 사제가 될 준비를 하던 중 기해박해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박해 중 체포를 예견한 성인은 조선 최초의 호교론서인 「상재상서」를 작성하여 천주교 교리의 정당성과 박해의 부당성을 논리정연하게 증언하였습니다.
1839년 7월 가족과 함께 체포된 그는 톱질형과 같은 참혹한 고문 속에서도 신앙을 굽히지 않았으며, 그해 9월 22일 서소문 밖에서 유진길 아우구스티노와 함께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성인해설]
성 정하상 바오로는 평신도의 몸으로 조선 교회의 재건과 성직자 영입을 주도한 한국 천주교회의 위대한 '평신도 사도'입니다.
그는 단순히 신앙을 지키는 것에 머물지 않고, 직접 국경을 넘나드는 위험을 무릅쓰며 교회의 제도적 기틀을 마련한 실천적 지성인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상재상서」는 당시 유교적 통치 이념에 맞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보편적 가치를 설파한 귀중한 문헌으로, 조정 관리들조차 그의 문장력과 논리에 감탄했을 정도였습니다.
이는 신앙이 무모한 고집이 아니라 깊은 성찰과 논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진리임을 보여준 영적 투쟁의 결과물이었습니다.
아버지와 형, 어머니와 누이동생까지 온 가족이 순교한 성 정하상 바오로의 가문은 한국 교회의 밑거름이 된 '순교자의 집안'으로서 오늘날까지 공경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하상 바오로 성인을 묵상하며,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신분과 안락을 내던지고 오직 주님의 일꾼으로 살았던 그의 헌신적인 사도직 정신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